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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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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금넝쿨
댓글 0건 조회 23,831회 작성일 12-04-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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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보백당 김계행(1431~1521) 선생은 경상도 수군만호(水軍萬戶)로
재직 중에 왜선 한척을 나포한 공적으로 임금에게 술과 비단을 하사 받았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한성 판윤을 지내다가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꾀하며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을 죽이는 등  조정이 어지러워 지자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풍경이 수려한 계곡에 만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말년을 보냈다

청백리 황희정승.. 태조의 부탁을 받은 두문동의 고려 신하들이 왕은 미워도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할 수 없다 하여 추천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황희다.

태종때 도승지의 자리에 올라 근친에서 왕을 보필하는 등, 신임이 두터웠으나
세자 폐출 문제로 양녕대군을 물리치는 것을 반대하여 귀양을 가게 된다.

세종이 왕이 된 후 양녕대군을 옹호했던 황희를 등용하고 그의 도움으로
조선 최고의 치세라 손꼽히는 시대를 열게 된다.
세종을 도와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갈매기를 벗 삼아 즐기는 곳이라는 뜻의 반구정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한국전쟁 때 불이 난 것을 1958년도에 복원하여 예스러운 멋은 덜하나
정자인 반구정을 비롯해 황희 묘,기념관이 함께 있다.


두암(斗巖) 조방(趙坊)은.. 1557(명종 12)∼1638(인조16).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으로
이칭(李?)의 문하에서 수학 하였으며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깊이 연구하여 
학문을 성취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창의하여 정암진(鼎巖津)과 기강(岐江) 등을
지키는 등 전공을 많이 세웠다.

또한, 정유재란 때에는 화왕산성 의진(義陣)에서 군무를 도와 많은 적을 무찔러
고을 사림들이 그의 충의에 감복 조정에 상소하여 포창을 청하였다.

임진왜란 뒤 낙동강 우포(藕浦)의 말바위(斗巖)위에 반구정을 짓고서 마주 바라 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내왕하면서 산수의 자연을 자신의 은둔생활에
흡수시켜 회포를 풀었다.

1607년(선조 40) 초봄에 정구(鄭逑)ㆍ장현광(張顯光) 등 도내의 선비 35인과 함께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합강정, 반구정. 평사낙안, 청송사, 망우정 등
9경을 화공에게 그리게 하고 기록한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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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산길을 돌아서 거의 길이 끝나갈 쯤
시야가 트인 언덕에 이르니 순간 화이트 아웃 현상이 일어나고 
비로소 새벽을 달려 온 몽롱함에서 깨어난다
햐~.. 뭐라 표현 할수 없는 기막힌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멈춰있는 듯 강물이 흐르고 너른 들판위로 안개가 피어 오른다
서 있는 기품이 흘러간 역사를 말해주듯 느티나무가 버티어 있는
평화롭고 고요한 새벽을 그저 경이로움으로 바라본다

꿈만 같이.. 화폭에 그려 둔 그림 같은 곳에 서 있다
폭정을 피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가 아니라도
돌아 가고 싶은 자연이라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려보지 않았으랴

유유자적 산천을 방랑하는 삿갓 쓴 나그네가 풍경에 감탄하여 봇짐을 내려
먹물로 흰 화지를 채웠을 것이며 후세에 남을 만한 시 한수쯤 남겼을 법도 하다
먼 과거로 부터 이어져 유유히 흘러 온 강물 위로 역사는 살아 숨 쉬고
산천 곳곳에는 희비를 안고 있는 흔적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냥 바라만 보자
경이로운 풍경을 담고자 새벽을 달려온 모습에 살며시 가소로움이 스며든다
세월속에 바래 져 갈지라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담으면 그만일터
셔트를 누름은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오만함이 아니겠는가..

인기척 소리에 어르신이 나오고..
깊은 산골 인적을 대신 해 줄 애처롭게 가꾼 꽃잎 하나라도 다칠까 염려하며
허락은 맏고 왔느냐.. 부인을 존경하라는 등 좋은 말씀으로 훈계하며
한양, 각지에서 온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 하신다

밤새 먼길을 달려온 손님들을 위한 어르신의 따뜻한 배려가 있음을 보게 된다
미리 준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면 해 있는 겨울동안 
깊은 산골에 많은 발길이 다녀 갔음을 짐작 할수 있다
잎이 돋아 나고 녹음이 우거지면 새벽에 달려오는 발길은 드물어 지고
자연의 소리 외는 정적에 쌓일것이다

그 좁은 소통의 길로 들어서면 옛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의 애환과 삶이 있고
그 토대 위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당파싸움과 왜세의 침략 가운데에서도 역사는 흘러 왔으며 
풍족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선조들은 살아 왔고 산천을 지켜 왔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어떤 기록으로던지 남아 있어야만 한다

안개를 헤치고 동편에서 해가 서서히 솟아 오른다
역사를 간직한 느티나무가 수백년전에도 이처럼 마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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